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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저녁부터 시작해 이틀간 새벽, 오전, 오후 일곱 번의 시간이 연결되는 설교라는 담임목사님 안내에 한번이라도 놓칠세라 열심이었고 본당 1, 2층이 가득하고 늦으면 자리가 없다. 영성과 삶,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 섬김의 삶, 신뢰의 길, 구원 받은자의 노래, 단순성의 삶, 존재와 행위의 제목으로 연속성을 가지며 정말 회의에서 신뢰의 단계를 차근차근 올라가는 것 같다.
주일저녁 첫날은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며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 5:16-18)는 말씀을 따라 차분한 목소리로 조용히 시작하신다. 옛 할아버지를 만난듯 하다. “영성이란 성령안에서 삼위일체이신 하나님과 깊은 삶을 추구하는 것, 영혼의 소생함이 필요하며 부분적 의미에서 온전한 목표로 변화하며 마음을 비우고 교회와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에게 초점을 맞추라. 그리스도인은 특별한 은혜의 자리로 부르심을 받았으니 성령이 인도하는 자리에서 용서와 받아들임, 화해로서 상실된 것들이 보상됨을 확신하고 미래가 분명함을 믿어야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의 세계로 성령이 인도하심을 깨닫게 된다.” 또 “하나님이 나를 변하게 하는 훈련으로 화해하고 은밀한 곳에서 조용히 기도하는 소통훈련으로 나를 비우는 삶은 참된 자기의 일면을 표현하게 되고, 영적기준으로 갱신되며 오직 예수 안에서 나의 유일성을 찾아야 한다.” 는 말씀과 “우리가운데 현존하시는 하나님과 깊은 삶의 교제로 자유함을 누리라”고 마무리 하신다.
둘째날 새벽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 23:1)로 선한목자이신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고 낮에는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니다.”(막10:35-45) 말씀으로 철없는 제자들의 행동을 통해 우리의 이기적인 욕심을 깨닫게 하신다.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려고 하면 자유자족할 수 있다. 자기의 의를 드러내려고 하면 위로부터 오는 위로와 보상을 못 느낀다. 내가 매순간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고 있는가? 하나님에게서 오는 은혜와 보상을 기대할 수 있어야 모든 보상과 기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삶이 될 수 있다.” “어디에서든 섬김의 자리에서 자기가 죽어야 평강이 온다. 이율배반의 삶이 변하여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만물을 새롭게 할 수 있고 하나님 안에서 완성되어 신령하게 된다.” 점점 철학적인 진솔한 삶을 따라가듯 목사님의 체험속에서 깨달으신 삶의 이야기를 성경과 함께 들려주시니 우리에게도 살아있는 말씀이 되어 하나하나 내 안으로 스며드는 듯 하다. 저녁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11:1-6)의 말씀으로 여러 가지 비유를 하시며 “겨자씨와 누룩”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서로를 이해하고 승화되는 삶이 되기를 간구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고 안 계신 것을 자기중심으로 판단한다. 내가 불안하고 해를 당하고 있으면 하나님이 떠난 것으로 인정하고, 조금 안정되고 일이 잘 풀리면 하나님이 함께 계신 것으로 생각한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아니고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 한 쪽으로 몰고 간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신다. 또 우리는 내 뜻대로 되지 않아서 인생을 헛살았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어떤 때는 가깝고 어떤 때는 멀게 느낀다. 하나님은 사랑, 권능자로 언제나 함께 계시며 생명적인 역사가 침묵 속에서 진행되고 이루어진다. 하나님과 온전한 연합이 있을 때 영합이 이루어지며 자유인이 된다. 집념과 모든 것에서 해방되고 거룩한 자존심이 형성되기 시작하고 만족하게 된다.” “믿음은 대상과 관계를 맺는 것이고, 신뢰는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연합의 길로 발전되는 것이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면 성장과 변형의 미래를 주신다. 영성이란 교회중심이면서 하나님과 깊은 삶, 교제가 있느냐 ,하는 것을 말함이며 교회에서 신앙생활 잘 한다고, 교회봉사, 십일조등도 행위중심의 겉치례 적인 일이 될 수 있다. 즉 모든 것은 깊은 신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신뢰는 긍정적 경험에서 소망을 향해 일어서게 하며 미래의 약속에 대한 확신으로 영원하고 완전한 승리의 삶을 보장한다. 이것이 신뢰의 회복의 길이 된다.” 목사님은 “아버지 오늘 하루가 온전히 하나님의 날이 되기 원합니다.” 로 말씀을 마치신다.
셋째날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107:1-9)는 구원 받은자의 노래로 소망의 말씀을 시작하신다. 낮에는 단순성의 삶이란 주제다. “단순성의 삶이란 바로 신뢰를 뜻하며 현실에 살면서도 현실을 초월할 수 있는 단순성의 훈련이 필요하다. 자유함, 자기를 있는 그대로 나타내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진정한 내면적 의미는 마음의 영적 태도이다. 모든 염려에서 벗어나라, 무엇이든 하나님의 선물이며 부족해도 은혜로 생각하라,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사업을 돌보고 있는 것이니, 내 것이라고 움켜쥐고 있지 말라. 그것으로 모든 사람이 행복해 질 수 있고 타인이 필요하다면 내어주라, 쓸데없는 습관성 소비를 버리고, 베푸는 일에 앞장서고, 하나님 창고이니 내 소유라고, 내 자녀라고 생각지 말라” “모든것에서 벗어나 불필요한 것에 연연하지 말고 자유함을 얻으라”
마지막날 저녁 찬양대의 찬양은 “채우소서 주의 성령”으로 마치 하늘의 천사들이 주께 화답하는듯 하나님께 올려 졌다. 새벽기도회를 빼고 다섯 번의 각 찬양대는 마르다와 마리아처럼 주님의 말씀을 들으며 화답하기에 즐거움이 넘친다. 모두들 잔치에 참여하니 얼마나 좋은가? 마르다는 헌신적 표상이며 마리아는 관상(觀想)의 표상(현존)으로 깨달음의 시간이다. “헌신적 행위에만 국한하면 어느 순간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된다.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삶의 깊은 의미를 갖지 못하며 다른 동경의 세계를 원한다. 현존 안에서도 누리는 기쁨을 상실하면 공허를 느껴 자꾸 하나님과 멀어져 간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가운데 현존하시는데도 불안과 적대감으로 원초적 축과 즐거움을 잃어버린다. 마지막 날 마지막 때 누구를 영광스러운 자리에 세울까? 존재중심? 행위중심? 실재는 행위중심을 더 중요시하나 새로운 피조물의 삶은 존재중심 영성이 되어야 한다. 행위중심의 신앙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함이 없어 보인다. 내면의 무의식은 외면에도 변화를 보이게 된다. 보이지 않는 존재 추구의 삶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삶의 표상이 된다.“ ”인간적 행위는 세상으로만 위로를 받으려 하나, 존재를 추구하는 것은 구조자적인 삶이며 보이지 않는 존재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이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6:33) 심오한 말씀은 아쉬움을 남기며 정리되었다.
담임목사님은 우리의 신앙의 양과 질이 더하여 진 것으로 말씀하시고 은은히 들려주신 말씀은 임영수목사님의 삶의 간증이며 실체이신 것 같아 머리가 숙여진다. 그리고 잠시 해이해진 우리의 마음을 다잡아 “회의에서 신뢰로” 하나님과의 소통을 제 자리로 돌려주신 것 같아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는 감사를 올린다. 그 받은 은혜를 어찌 다 표현할까? 다 요약 할 수 없지만, 정리되지 못한 부분에서도 참석한 성도는 많은 은혜를 받았으리라. 잔치를 벌이면 준비하는 마르다 같은 분들도 많다. “헌신적 영성 아닌 관상적 영성으로 존재를 추구하는 은혜의 자리로 보전해야 한다. 경건의 능력으로 오늘을 설 수 있는 삶이 필요하다” 고 하신다. 헌신하는 삶도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귀한 사명이며 은혜라면 아마도 모든 삶에는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준비된 때가 있다”는 뜻을 말씀하신 것 같다. 특히 “깊이”와 “현존”의 단어가 반복되는 매순간마다 우리의 존재와 행위는 더욱 더 영성의 삶으로 가까워지는 듯 했다. 목사님 주안에서 항상 강건하시며 자유의 삶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e-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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