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교회에 헌신하신 원로·공로장로님들의 귀한 말씀을 듣고자 <새문안>지에서는 매월 <원로와의 대화>를 마련하고 있다. 지난 10월 26일 주일 2부 예배 후에 최영진 공로장로를 <새문안>지 편집실에서 만나보았다. (편집자 주)

 

 

 

새문안교인이어서 자랑스럽다 생각한 때는 언제이신가? 그리고 오랜 세월 다니시면 느낀 새문안교회의 특징이라면?

언젠가 은퇴자들 모임에서 ‘새문안은 지극히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수 있는 공동체다. 이것을 잘못 인식하면 차갑다거나 냉정하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라고 얘기했어요. 새문안은 하나의 흐름, 비유로 말하자면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라고 생각해요. 그 강물이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 흔들리지 않는 그런 교회가 새문안교회입니다. 부목사님들께 5년에서 10년까지 우리교회에서 시무하시는 동안에 한국교회가 걸어가는 모델로서의 우리 새문안교회의 구조를 몸에 익혀서 가시라는 말씀을 드리곤 해요. 교회 내․외적인 문제와 이해관계들로 인한 문제가 많지만 새문안은 그런 문제들을 견제할 수 있는 당회가 있어요. 그리고 당회를 견제하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바로 민주적인 구조 속에서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어서 그런 새문안 교회가 자랑스러운거죠.

 

새문안교회는 언제부터 다니게 되셨어요?

중학교 1학년 때 새문안교회에 다니다 이사 등으로 인해 여러 교회를 다녔고, 새문안교회 박대선 장로님 동생이신 박대인 장로님의 이끄심으로 다시 오게 된 거에요. 그때가 76년인가 그래요. 처음에 와서 증경장로로 있다가 94년도에 시무장로가 되었어요.

 

장로로 시무하시면서 특히 기념에 남는 사업이 있으시다면?

2년 동안 사회부장을 하면서 사회부내에  9개의 팀을 만들어 활성화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당시 어린 청소년 돕기, 법률상담, 극빈자 구제, 의료선교 등등 여러 사업이 있었는데 더 세분화해서 9개 팀을 만들었죠. 파고다공원에 가서 어르신들께 식사대접도 하고, 불법 체류하여 본국으로 돌아가는 외국인노동자들을 위해 성경과 옷가지들을 마련해주기도 했어요. 돌아가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성경은 버리고 옷가지만 취한다는 말도 있었지만 단 한사람이라도 믿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꾸준히 진행했지요. 블라디보스톡 우리교단 교회 지원,   베트남의료선교도 도왔습니다.

 

장로님께서 생업으로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사회생활을 하시며 어려움이 있을 때 어떤 말씀으로 위로를 받으셨어요?

30년 동안 전문건설 사업을 했어요. 전문건설협의회 회장을 6년 했어요. 그래서 건축에 관한한 경험이 좀 있지요. 언젠가 새로핌찬양대에서 봉사할 때에 젊은이들과의 미팅 시간이 있었어요. 그때 젊은이들이 질문한 것이 ‘장로님 신앙과 신체의 젊음의 비결이 무엇이세요?’ 라는 질문이었어요. ‘젊음은 내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고 대답했지요. 모든 것을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삽니다. 여호수아 1장 9절 말씀에 의거해 모든 어려움을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는 말씀으로 위로 받고 힘을 얻어 어려운 상황을 이겨냅니다. 그래서 찬송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참 평안을 몰랐구나”을 잘 부릅니다.

 

 

할아버님께서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읽으시고 믿음을 갖게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가족의 신앙 역사에 대해 이야기 해주시죠.

제 고향이 경주인데 저의 할아버님 최만철(崔晩哲)영수께서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쯤에 경주시내에서 남쪽으로 가면 이조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약 90%정도가 최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었어요. 소위 그 시대 양반들이었죠. 그런데 하루는 우리 할아버지께서 시장을 가서 천로역정을 손에 넣게 되신 겁니다. 그래서 상투를 자르시고 예수님을 믿게 되셨는데, 결국엔 그 동네에서 쫓겨나다시피 해 불국사역 앞쪽인 구정리 쪽으로 이사하셔야 했지요. 이사하신 후 얼마 안 되어 돌아가시고 두 아들 최현순 장로와 최경덕 장로가 그 신앙을 이어, 제 아버님이신 최현순 장로는 구정교회를 통해 구정동 일대를 신앙의 산성으로 이룩하여 결국 그곳 주민 거의 모두가(약 900호) 예수를 믿게 되었지요. 제 형제는 7남매인데 모두 서울로 유학 올라와 공부하여, 예수님을 믿게 되면서 우리가족 전부가 개명하게 된 셈이죠. 참 감사한일입니다. 새문안 청년들도 항상 건전함을 지키는 신앙생활을 했으면 교회에서 온전함을 지키고 그런 교회를 사모했으면 좋겠습니다. 건축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우리 교회는 경제가 어려운 때인 만큼 모든 결정을 기도와 충분한 논의를 거쳐 실행하고 주님 말씀 안에서 언제나 새 힘과 희망을 잃는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대담을 끝내고 <새문안>지 사진기자 앞에서 아내 김은주 권사와 다정한 포즈를 취하시던 최장로가 다시 찬송가486장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참 평안을 몰랐구나”를 불러 주신다. 목소리도 낭랑하게! “내 주 예수 날 오라 부르시니 곧 평안히 쉬리로다....” 그 찬송을 듣는 우리 편집실 기자들은 오랜 세월 신앙생활을 하시며 참 많은 일을 하신 장로님 눈가에 잔잔히 맺힌 이슬을 보았다. “주 예수의 구원의 은혜로다 참 기쁘고 즐겁구나 그 은혜를 영원히 누리겠네 곧 평안히 쉬리로다.” 최영진 장로님과 김은주 권사님이 하나님의 큰 은혜 가운데 더욱 강건하시길 기도한다.

 [e-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