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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외의 다른 복음은 없다! 이것은 선교의 대주제이다. 왜 다른 복음은 없을까? 예수 그리스도 외의 다른 복음은 없다는 주장은 기독교 제국주의적 논리가 아닐까? 한국과 같은 다종교 사회에서 위와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은 타종교를 멸시하는 것이 아닐까? 더구나 한국의 많은 국민들은 종교 사이의 평화를 갈망하는데 예수 그리스도 외의 다른 복음이 없다고 하는 것은 종교 사이의 평화를 깨는 것이 아닐까? 오늘날 상당수의 한국의 지성인들이 세계 종교를 같은 평면에서 다루고, 다양한 구원의 가능성을 여는 방향으로 나가는데 오직 예수라는 말은 한국의 지성을 멸시하는 도전이 아닐까?
올해 SBS에서 4부작으로 방송한 「신의 길 인간의 길」은 한국 기독교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 방송은 기독교의 본질을 파괴시킬 수 있는 매우 위험한 내용을 가득 담고 있었다. SBS는 이 방송을 의도적으로 시작한 것으로 보이고, 그 의도는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공격하면서, 한국 기독교 자체의 문제성을 부각시키고, 모든 종교는 상대적이기 때문에 종교 간의 평화스런 공존의 세계로 가야한다는 제작진의 이념을 한국 땅에 심기 위함으로 보였다. 이 방송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아연실색케 했고, 또한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물론 일부이긴 하지만 이 방송을 계기로 한국 기독교가 반성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오늘의 한국 기독교에는 물론 약점이 있고 반성할 점이 있다. 사찰 방화, 불상 훼손, 단군상 훼손 등 일반 국민들의 반감을 불러 일으킬만한 일들이 일부이긴 하지만 한국의 기독교에 의해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일들이 있다. 이런 일들은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기독교의 핵심 교리와 관련은 있지만 잘못 관련을 맺은 것들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길은 평화의 길이었고 설득의 길이었지, 파괴나 강압이나 폭력으로 가는 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국민들은 종교 간의 평화로운 공존을 원하고 있다. 오늘날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과 테러 배후에는 종교 간의 갈등이 깊이 내재하고 있다고 한국 국민들은 믿고 있기 때문에 더욱 종교 간의 화해와 평화를 염원하고 있고, 이 염원 때문에 SBS의 「신의 길 인간의 길」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본 국민들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 가지 시각으로만 종교 간의 문제를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편협한 시각은 오류를 일으킬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모든 종교가 동일하고 상대적이라는 것은 종교 간의 문제를 바라보는 한 가지 시각일 뿐이고, 다른 중요한 시각들을 무시할 위험이 있다. 이 위험은 위대한 종교와 저급한 종교를 구별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인간과 사회에 엄청난 해악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오는 위험이다. 세계 종교를 깊이 연구한 학자들은 종교 사이에는 일부 유사성이 있지만 그 유사성을 무색케 할 정도의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이미 밝혀 놓았다. 또한 세계의 종교 가운데 역사 퇴행적인 종교, 인간을 제물로 받는 종교, 비도덕적인 종교, 인권을 심하게 침해하는 종교, 성차별의 종교 등도 많이 존재하고 있다. SBS의 「신의 길 인간의 길」은 종교 사이에 존재하는 편차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오류를 범했는데 특히 기독교와 다른 종교 사이에 존재하는 큰 편차를 의도적으로 무시한 오류를 범했다. 일반 종교에 대한 낙관론 역시 종교를 바르게 보는 시각이 아니라는 연구 결과도 많이 나와 있다.
그런데 위와 같은 종교에 대한 일반적 이해를 넘어서 하나님 외에는 정말로 다른 신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개인과 국가가 잘되는 길이고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 몰락의 길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성서는 처음부터 참 하나님과 거짓 신과의 투쟁이 중심 주제로 흐르는 책이다. 모세와 애굽 선지자와의 대결,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와의 대결 등, 성서의 이야기는 가짜 신을 몰아내고 참 하나님을 섬기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십계명의 첫째 계명 및 둘째 계명은 모두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겨서는 안 됨을 강조하고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고, 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개인과 민족의 흥망성쇠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 참 신은 애굽의 가짜 신을 부수고 그의 백성을 해방시키셨고, 그의 백성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신 생명의 신이셨다.
예수님의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이자 기독교와 타종교를 구별하는 결정적 시금석이다. 기독교만이 참 종교라는 것이 결정적으로 드러나는 곳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이다. 왜냐하면 다른 종교의 조상들은 모두 죽어 무덤에서 썩었기 때문이다. 인류를 덮고 있는 최대의 원수인 죽음은 오직 예수님에 의해서만 부서지고 깨어졌다. SBS의 「신의 길 인간의 길」은 애굽과 중동 지역에 일부 부활 신화가 있었고 예수님의 부활도 그 시각에서 보아야 한다는 관점으로 방영했는데 이는 크나 큰 오류였다. 예컨대, 조선 시대에 어떤 소설가가 신화적 영웅을 그리면서 그가 단지 몇 명의 사람을 거느리고 북쪽 오랑케와 남쪽 왜구를 물리쳤다는 신화적 소설을 썼다고 하자. 그리고 이 소설에 영향을 받아 유사한 신화적 소설이 많이 있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소설 속에 이런 영웅이 있다고 해서 이순신 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신화로 보아야 할까? 사람이 다시 살고 싶은 것은 인류의 소망이고 이 소망이 투영되어 애굽과 중동 지역에 종교적 부활 신화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이 만든 허구적 신화이고,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건이었다. 애굽과 중동의 부활 신화와 예수님의 부활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다른 이유는 예수님의 부활은 처음부터 목격자와 증인에 의해 증언된 사건이기 때문이다. 증인이 없는 만든 이야기와 수많은 증인에 의해 증언된 사건을 같은 시각으로 다루면 안 된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죽음이 깨진 놀라운 사건을 눈으로 목도했고, 자신들이 본 놀라운 사건을 전한 것이다.
초대 교회의 복음은 너무나도 단순한 것이었다. 그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셨고, 이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도 다시 산다는 것이었다. 기독교는 복잡한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명상의 종교도 아니고 윤리 도덕의 종교도 아니고 우주를 사변하는 종교도 아니다. 기독교는 부활하신 예수님 때문에 시작된 종교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죽음이 깨진 놀라운 현실 앞에 서 있었다. 그것은 너무나도 큰 감격이었고 모든 인류의 희망의 동터 오름 이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놀라운 현실을 경험하면서 이 기쁘고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 앞에 서 있었다. 애굽과 중동의 부활 신화가 감격으로 가득 찬 공동체를 만들었는가? 애굽의 부활 신화는 수많은 미이라를 만들었을 뿐이다. 그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을 본적이 없었다. 그런 까닭에 감격도 있을 수 없었다. 그들 가운데 죽은 자의 부활을 주장하다가 순교한 자가 어디 있는가? 많은 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예수께서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초대 교회의 탄생은 불가사의한 수수께끼가 된다고 보고 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자신들의 선생님이 십자가에서 죽었는데 무엇 때문에 죽음을 무릅쓰고 선생님께서 살았다고 외친단 말인가! 초대 교회는 순교자의 공동체였다. 그들이 순교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 단순하고 결정적인 이유 외의 다른 것으로는 결단코 순교자들의 공동체의 탄생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부활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도 기독교를 타종교와 구별하게 하는 결정적 장소이다. 이 십자가는 세계 종교가 알지 못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기독교 구원관의 핵심이 계시된 장소이다. 십자가는 세계의 모든 종교의 구원관을 파괴한다. 세계 종교는 일반적으로 율법주의적 특징을 갖고 있는데, 기독교의 복음은 율법주의적 구원관을 파괴하는데서 시작되고 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셨을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은 부활과 더불어 기독교가 세계의 다른 종교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극명하게 나타내는 곳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께서 만민의 죄를 짊어지시고, 처형되어야 할 인류를 대신해서 처형당하신 너무나도 감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값없이 주어지는 용서와 구원은 세계 종교 속에는 결단코 없을 것이다. 세계 어느 종교에 신이 인간을 위해 죽으심을 말하는 종교가 있는가! 인간의 종이 되고 인간을 섬기고 자신에게 반역하는 인간을 위해 대신 죽는 신을 과연 세상의 종교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가! 세계의 종교에는 오히려 신이 인간을 제물로 받는 종교가 일반적일 것이다. 멕시코의 아스텍 문명에 나타나는 종교 역시 인간의 심장을 제물로 받는 태양신이 등장하고 있다. 기독교의 복음은 신이 인간을 괴롭히고, 다양한 제물을 받고, 잘못하면 벌주는 세계 종교의 잘못된 가르침을 뒤엎는 복음이다. 십자가에는 인간을 섬기는 신이 계시되어 있고 인간을 위해 대신 죽으시는 극단적인 사랑과 자비의 신이 계시되어 있다. SBS의 「신의 길 인간의 길」의 제작진은 이 극단적인 사랑과 자비의 신을 세계 어느 종교에서 발견할 수 있는지를 밝혀야 할 것이다.
혹자는 불교의 아미타불 사상 속에 자비의 부처 개념이 있는데 이것이 기독교의 은총의 하나님과 유사하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런데 잘 연구해야 한다. 불교의 아미타불 사상 속에 나타나는 자비의 부처는 석가모니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고 후대에 발전된 것인데 특히 중국과 한국 및 일본 지역으로 발전된 대승불교의 사상이다. 이 대승불교 속에는 기독교적 요소들이 일부 나타나는데 이는 기독교의 전도로 말미암은 불교 사상의 변화로 보인다. 불교 사상 속에 나타나는 미륵불에 대한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기독교의 재림 예수 사상이 불교에 영향을 미치면서 용화세계라는 신천신지를 만드는 미륵사상이 나타난 것일 것이다. 대승불교의 발전과 기독교의 동방지역으로의 전도의 역사는 시기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거의 일치한다. 중국 당나라 시절에 기독교의 네스토리우스파인 경교가 크게 포교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유념해야 한다.
십자가에 계시된 자비의 신은 세계 종교가 전혀 몰랐던 신이다. 불교는 본질적으로 율법주의적인 종교이지 은총의 종교가 아니다. 불교의 윤회설은 이 땅의 삶의 결과에 따라 사람의 운명이 나누어짐을 가르치는 교리이다. 조로아스터교나 이슬람교도 철처히 율법주의적이다. 기독교의 복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십자가와 부활은 너무나도 새롭고 너무나도 놀라운 것이고, 타종교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외의 다른 복음은 없다! 세계 종교는 여전히 오류와 어둠 속에 있다. 그들은 아직도 율법주의를 가르치고 인간을 율법의 사슬 속에 묶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단 한 분 생명의 주이시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만이 부활하셨고 곤경 속에 있는 우리를 참으로 구원하시고 살리실 수 있기 때문이다. 가짜 신은 결단코 우리를 살리지 못한다. 모든 종교를 같은 평면에서 다룬 SBS의 「신의 길 인간의 길」은 종교 간에 존재하는 어마어마한 편차를 무시한 오류를 방송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가 세상을 향해 선포해야할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진리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는 은혜와 보화를 발견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희망이자 큰 기쁨일 것이다. [e-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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