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낮 초봄의 쌀쌀한 날씨지만 전도부(부장 이기연 장로)에서 준비한 전도지와 예쁜티슈가 담긴 가방을 들고 '새문안교회'라고 적힌 띠를 몸에 두르고 교회문을 나섰다. 교회 정문앞 횡단보도 건너편으로 건너가 때마침 점심을 먹으러 나오는 직장인들과 행인들에게 웃는 얼굴로 다가가 말을 건네었다. "안녕하세요. 새문안교회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정말 오랜만에 해보는 노방전도라 처음엔 쑥스러워 목소리도 크게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니 부끄러움도 사라지고 나도 모르게 입에서 찬양이 흘러나오며 정말 전도지를 받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구원을 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좀더 적극적으로 다가가 전도지를 내밀게 되었다. 전도지를 내밀면 어떤 사람들은 아직은 차가운 날씨 탓에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어 귀찮은 듯 받지 않고 가기도 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마치 내가 다가오는것 조차 싫다는듯 빙돌아 가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내민 전도지와 티슈를 주저주저 하면서도 받아가는 사람들을 볼때면 어떻게 그렇게 고맙고 사랑스런 마음이 드는 것인지....정말 이분이 꼭 주님을 알게되고 만나게 되어 그 영이 구원을 받고 삶이 기쁨으로 넘쳐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지는것이였다.

  이렇게 찬양을 흥얼거리며 전도를 하다보니 외국인을 만나기도 하였는데 영어로 전도할줄은 모르고 망설이다 그냥 간단한 인사말 정도 건네며 해보자 하는 마음에 "have a nice day!~" 하면서 전도지를 내미니 "you, too!" 하면서 전도지를 받아 가는것이였다. 어찌 생각해보면 부끄러운일 일수도 있으나 전도를 함에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는 맘을 주셨던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롬1:16)

 

  또 하나 기억에 남는것은 사람들이 다니는 보도에 심겨진 가로수 화단에 문제가 생겨 복 구하시던 인부들 중 유독 전도하고픈 맘이 드는 청년이 있었는데 가져간 전도지를 다 돌리고나서 마지막 하나 남은 전도지와 티슈를 공사가 잠시 끝나기를 기다려 "총각, 왠지 꼭 주고 싶은 맘이 드네..." 하며 건네니 수줍어 하며 전도지를 받아 들었었다. 주님께서 마음으로 인도하셨음을 믿으며 그 성실해 뵈던 청년이 꼭 주님을 영접하고 구원받길 기도한다.

  이렇게 30~40분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전도지를 나누어 주며 "예수 믿으세요" 했던 말에 마음이 뜨거워져 쌀쌀한 날씨탓에 볼과 손은 발그래졌어도 춥지 않았던 하루였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러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고전 3:6~7)

 

  올해 1월 부터 매주 목요일을 ‘목요 전도의 날’로 삼아 노방전도를 한다는 것을 여전도회 협의회를 통해 알게 되었었고 내가 속한 6여 몇몇 집사님들과 같이 이런 기회를 통하여 전도에 동참을 해보니 잠깐의 시간이지만 수고보다는 기쁨이 더 크기에 앞으로 좀더 확실한 홍보가 되어 많은 성도들이 이 <목요 전도의 날>을 기억하고 적극적으로 동참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새]

 

 

  전도라하면 나에게 씁쓸하면서도 우스운 두 번의 경험이 있었다. 초신자 시절인 1980년 초 사회부에서 김포 어느 교회에 의료선교를 갔었다. 그 때 여전도회 회장이었던 박병숙 권사님이 11시 예배를 드리고 막 나오는데 나와, 지금은 고인이 된 박태정 공로권사를 잡고 하시는 말씀이 “둘이서 사회부 가는데 차에 올라타 따라가 축호전도하고 오라”고 명하셨다. 축호전도가 무엇이냐고 되물으니 전도지를 집집마다 돌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김포군 어느 야산 위에 조그마한 교회에 의료진은 짐을 풀고 의료선교를 시작했고 박권사와 나는 소위 축호전도를 시작했다.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초가집을 찾아다녔으나 가을 추수철이어서였는지 빈 집이 많았다. 들어가 마룻바닥에 한 장씩 놓고 나왔다. 대문도 울타리도 없는 시골 집 앞에서 “안녕하세요. 계세요.”하고 소리치며 찾아 다니다 어느 집 앞에서 또 “계세요”, “계세요”하는데 커다란 누런 개가 무섭게 짖으며 뛰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원래 개를 싫어하고 무서워하던 나와 그는 기절 초풍을 하고 몇장 남은 전도지를 흘리며 본부로 숨차게 도망쳐온 기억이 있다.

  두 번째는 1990년 봄 부흥사경회(주일저녁이었음) 전도지를 돌릴 때였다. 지금의 제2찬양대실이 그 당시엔 중층집회실이라고 해서 각종모임을 가질 때다. 전도부가 모였다기에 문을 빠끔이 열고 들여다 보는데 전도담당 김대동 목사(분당구미교회담임)가 들어오라고 하시기에 들어갔더니 설명을 다 끝내고 오늘 저녁부흥사경회 전단지를 노방전도 나가는 집사들에게 나누어주고 계셨다. 나보고는 광화문에서 지하철을 타고 서대문까지 가는 동안 전철 안에서 노방전도를 하라 하셨다. 축호전도 때도 실패하고 겁이 났는데 이번엔 노방전도를 하라시니 순종하는 마음으로 전도지 20장 가량을 들고 전도부끼리 짝지어 가는데 나는 짝도 없이 혼자 전철을 타면서 걱정이 태산 같았다. 지하철에 오르며 누구에게 어떻게 말을 시작해 전할까 망설이며 가슴조이다가 입구 의자에 앉아있는 애인같은 남녀 커플에게 다가가 웃으며 공손히 인사하며 “혹시 오늘 저녁 시간 있으면 새문안교회 부흥회에 두 분이 오세요” 하며 전도지를 전하니 남녀가 서로 쳐다보더니 웃으면서 받았다. 용기를 얻어 사람이 많지 않은 전철 속에서 젊고 인상좋은 남녀만 골라 전도지를 전하고 있는데(한번도 거절 당하지 않고) 저 끝 노인석의 험상궂게 생긴 노인이 큰 소리로 “여보시오 그것이 무엇인데 젊은이들만 골라 주고 왜 나는 안주오? 하면서 큰소리로 화를 내길래 얼른 그 앞에 가서 두어장 남은 것을 다 주는데 ‘서대문’이라고 하기에 얼른 뛰어 내리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2~3분거리가 한 시간도 넘게 느껴졌다. 그러나 전철간에서 노방전도지를 돌린 용기가 스스로 가상하다고 위로하며 전도지를 받은 몇 커플이라도 부흥회에 와 주었으면 하고 기도하면서 서대문에서 교회까지 걸어온 기억이 있었다.

 

  축호전도가 무엇인지 노방전도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순종했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첫 시간에 늘 나는 새문안교회 교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예수 믿으니 마음 편하고 욕심이 적어지고 남들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서 기쁘고 즐겁게 산다고 말하곤 했다. 이것이 관계전도라는 것도 이번에 전도학교 교육을 통해 처음 알았다.

 

  “잃은 양을 찾아 하나님을 기쁘시게”라는 금년도 표어나 “비상 1188”이란 새생명운동의 목표를 놓고 노심초사 하고 있는데 일일전도학교 학생 모집이란 부스에 들어가 1차로 신청하고 2월 12일(토) 2시부터 6시까지 재미있고 유익한 교육을 받았다. 여섯 분의 장로님을 포함해 70명이 참석했다. 나는 습관대로 맨 앞 줄에 원영희 권사와 나란히 앉았다. 1교시엔 <전도대상자 접촉법 및 다양한 관계 형성 방법>이란 제목으로 성령충만 은혜충만해 기쁨이 넘치는 정인상 목사의 간증을 겸한 강의가 너무 감격적이었다. 강의가 정말 좋아 원권사와 서로 바라보며 “바로 이것이다”하고 공감했다. 2교시는 <주요 반대 질문 대처 요령>이란 주제를 가지고 지성과 영성이 충만하신 이두희 목사님이 열강하셨다. 짧은 예화지만 유익했다. 3교시는 <요약 복음 제시 암기>란 색다른 강의였다. 황금색(은혜) 검정색(인간) 흰색(하나님) 빨간색(그리스도) 초록색(믿음) 등 5가지 색을 보면서 연상암기하는 색다른 강의를 자신 만만한 강동협 목사님이 시원스럽게 강의하셨다. 4교시는 노방전도 실습(교회주변) 30분과 정리 모임 등 10분 등 정확히 6시에 끝났다. 우리는 시간시간마다 감탄 감격하며 계속해서 우리가 알고 싶고 배워야 할 것을 꼭 집어 알기 쉽고 재미있게 강의하시는 세 분 목사님께 감사하며 기뻐했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전도해야 할 사명이 있는 새문안 성도는 한 사람도 빠지지말고 다 받아야 할 일일전도학교 과정이니 순차적으로 연중 계속 되기를 건의하고 성도들에게 권유해야 하겠다고. 그리하여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이 되라하신 주님 말씀을 실천하는 새문안인들이 다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e-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