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교와 전도는 다른 것인가

  선교와 전도는 그 핵심에 있어서 동일합니다. 선교사와 전도자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행 1:8)입니다. 또한 선교와 전도는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여 예수님을 자신의 주와 구주로 고백하게 하고 구원을 얻게 한다는 면에서 같은 것입니다(막 16:15-16, 마 28:18-20). 성경도 이것을 구분하여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둘을 나누어 보는 것은 어떤 면에서 무의미합니다. 전도와 선교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중요한가와 같은 논쟁도 무의미합니다. 둘 다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양자를 구분하여 말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본질적인 문제라기보다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고려해야할 실제적인 문제로 인한 것입니다.

 

  한 가지 견해는 선교와 전도의 차이를 그 ‘대상’에서 찾는 것입니다. 전도는 문화나 언어가 동일한 국내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태어나고 자라온 나라이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쉽게 적응할 수 있습니다. 해외에 나가서 복음을 전할지라도 같은 동족을 대상으로 하는 사역은 좁은 의미에서 전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교는 언어와 문화가 우리와 다른 민족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선교는 타문화 혹은 국경이라는 장벽을 넘어가야 합니다. 선교사는 선교지의 언어, 습관, 기후, 문화 등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편의상 전도와 선교를 구별하는 것입니다. 문화나 언어가 전혀 다른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도여기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견해는 복음을 전하는 행위의 구분입니다. 전도가 구원이 필요한 자에게 복음을 직접 전하는 행위에 국한된다고 한다면, 선교는 전도에 섬김과 나눔 그리고 봉사와 같은 사회참여를 더한 것으로 정의됩니다. 즉, 선교는 전도보다 더 포괄적인 개념으로 보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취해지는 모든 방법과 활동들이 선교라는 개념에 포함됩니다. 고아원과 학교를 세우고, 집을 지어주고, 병원을 운영하는 것이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구원과 사랑을 나누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선교 활동 입니다. 궁극의 목표는 복음 전도이며 이러한 목표 수행을 위하여 다양한 활동이 이용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람직한 견해는 전도와 선교는 분리될 수 없으며 한 가지 용어만 사용한다면 ‘선교’를 사용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봅니다. 우리 교단의 신앙고백서에도 “선교에는 국내 선교와 국외 선교가 있다.”고 하여 포괄적 개념의 ‘선교’로 용어를 통일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대한예수교장로회 신앙고백서 제9장 선교).

 

  2. 선교와 전도는 왜 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성경을 주신 이유를 생각해본다면 우리는 그 답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실 계획과 생각을 갖고 계시지 않았다면 인간의 언어로 된 성경을 주실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성경의 전체가 하나님의 선교 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선교는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의 구속의 뜻에 근거하며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부활과 재림의 중간기에 수행하는 사역인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선교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주신 복음 전도의 대위임령(마 28:18-20) 위에 확고히 서 있는 것입니다. 선교는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근거하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가 보내심을 받은 것 같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보내시는 그 부르심 위에 서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시는 거룩한 의무이며 그리스도인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선교하는 동기도 이에 근거해야 합니다. 건전하고 순수한 선교의 동기는 첫째, 세상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확고한 의식입니다. 자신이 복음에 대한 확신 없이 행하는 선교 활동이라면 다른 사람을 구원의 확신에 이르게 할 수 없습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는 마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하는 이유에 대하여 자신이 부득불 해야 할 일이라고 합니다(고전 9:16).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확실한 고백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명령에 순종하는데 무슨 다른 이유나 변명이 필요치 않다는 말입니다. 결국 이 두 가지 순수한 동기의 근거는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진실로 깨닫고 그를 향한 사랑을 소중히 간직한 사람이라면 선교의 다른 동기가 필요치 않는 것입니다.

 

  3. 어떻게 선교와 전도를 할 것인가

  사람이 살아가는 문화와 환경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계속 변화합니다. 선교와 전도를 어떻게 하는지 그 방법은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사회적인 여러 가지 비판으로 말미암아 선교와 전도가 매우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외부의 문제가 아니며 우리 자신의 문제임을 겸허히 고백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을 향한 세상의 비판도 하나님께서 세상을 들어서 우리의 썩은 환부를 도려내시고자 하는 사랑의 징계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선교와 전도의 방법에 있어서도 근본적인 것을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먼저 교회는 선교적 교회이어야 합니다. 선교적 교회는 교회를 하나님의 파송을 받아 세상 한가운데서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고 실천하는 선교적 공동체로 보는 것입니다. 교회는 교회 자체를 위해 존재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지역 사회 혹은 세상과 함께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한국 교회는 세상과 하나님 나라와의 관계성을 대립적인 관계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신실한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가능한 멀리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게 하였습니다. 거룩하고 경건한 생활이란 세상적인 일에서 멀리 떠나는 것으로 이해하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 한국 교회는 세상 사람들에게 배타성과 위선의 인상을 강하게 심어주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것을 먼저 회복해야 합니다.

 

  또 한가지는 그리스도인 개개인이 자신의 선 곳에서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 되어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마 5:13-14). 세상을 그리스도의 것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자신이 소금의 맛을 유지하고 있어야 하며, 세상의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빛을 잘 반사시킬 수 있도록 나의 거울을 잘 닦아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현재 서 있는 자리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순간 우리는 이미 선교적 삶을 살기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의 자세가 세상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미치게 되면 그것이 접촉점이 되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통로가 되며 신뢰를 얻을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선교의 주체이며 선교를 이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혼자 일하시지 않고 교회를 통해서 교회와 함께 일하십니다. 그리고 그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기 위한 성경적 비전을 제시하고, 성도들은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장할 때에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세상에서 이루어나가게 될 것입니다.  [e-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