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현 안수집사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건만 진정 봄은 아직 아닌 것 같다.

절기상으로 봄이 분명한데, 아직 겨울의 잔영(殘影)이 가시지 않았을 때 쓰는 표현이다.
그러나 이 말은 문자적인 뜻 자체보다 그 안에 복선(伏線)의 은유적 의미를 담고 있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2-30여년전 권위주의 정권 시대, 긴급조치 발령과 해제가 빈번하고 인신구속이 횡행하던 시절, 절기상 봄이건만 정국은 서슬 퍼런 냉기류가 흐르고 있을 때, 뭔가 나름대로 속마음을 나누고 싶었던 정계 인사들 사이에 은유적 화두로 곧잘 사용되던 말이었다. 4월에 들어서까지 강원지역에 눈이 내리고 추운 기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유난히도 길어 보이는 금년 봄은 ‘춘래불사춘’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춘래불사춘’을 읊는 소리는 어느 곳에서도 들려오지 않는다. 왜일까? 영어에 익숙한 신세대들이 고전적 어귀에 익숙치 않아서인가, 시적 표현으로 세상을 관조(觀照)하는 여유로운 시감(詩感)이 오늘의 정객들에겐 메말랐기 때문인가, 아니면 정국이 진정한 태평성대여서 그런가?
춘래불사춘, 봄이 왔건만 진정 봄은 아직 아닌 것 같다.


우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정세가 따뜻한 봄을 만끽할 여유로움을 앗아가고 있다. 바다 건너 일본에선 ‘독도의 날’을 제정하고, 독도를 자기 땅이라 우기는가 하면, 일제 당시 만행을 숨기고 오히려 미화하며 왜곡 집필된 교과서를 ‘남의 일’이니 간섭 말라 하고 있다. 중국은 ‘동북공정’(東北工程)입네 하며 고구려, 발해 역사를 자기네 것으로 만들려 하고, 패권주의로 나아가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 핵무기를 담보삼아 큰 도박을 하려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대표는 ‘균형자 역할론’이니, 또는 있지도 않은 ‘남방 삼각동맹(?)에서의 탈피’를 거론하더니, 바로 뒤이어 ‘한미동맹 강화’를 이야기하는 등, 도무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건지 종잡을 수 없는 ‘갈 지(之)’자 행보를 하고 있다. 학자들이 학문적으로 거론하는 게 제격일 소론(所論)을 권력자가 공식 정책인양 공개 발언하는 것은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