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그 추운 날 이 낯익은 여자를 교회에서 맞닥뜨린 것이다. 벌써 몇 년째 교회 주변을 배회하기에 그냥 그가 거기 있구나 하고 지났고 구걸을 할 때마다 적은 돈을 집어 주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날은 달랐다.

그를 보는 순간 나는 이 추운 날에 어디서 어떻게 잘까 하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그를 붙잡고 꼬치꼬치 물었다.
“이름은요?”
“생년월일은요? 잠은 어디서 자나요?”
처음으로 그에 관한 몇 가지 정보를 얻게 되자 나는 주민등록을 해서 정부보조금을 얻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 잠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간단명료하게 결론을 내는 게 아닌가.
“그러니까 방 얻게 10만원 만 모금해 줘요.”
10만원으로 방을 얻을 수 있다면 열 개인들 못 얻어주랴. 짜안한 마음이 물스미듯 내 마음에 젖어들었다. 그러고도 여러 일에 쫓겨 지내느라 해가 바뀐지도 훌쩍 두 달이 되고 만 것이다.
내 제안에 대하여 회원들의 의견은 만발했다. 그것은 정부가 할 일이지 우리가 손 댈 일이 못 된다. 통장을 하나 만들어서 방 얻을 진짜 모금을 하자, 10만원을 한꺼번에 주면 안 되니 조금씩 나누어 주자……. 다 옳은 소리였다.
부자도 아니고 고정수입도 없는 나지만 마음만 먹으면 10만원 쯤 가만히 그의 손에 쥐어줄 수도 있다. 그런데 왜 내가 이런 의견을 여러 사람 앞에서 내 놓았을까?

발밑에 늘 밟고 다닌 풀에게 관심 한 톨도 주지 않던 어느날, 짓밟힘을 이기고 힘겹게 살아 난 그 생명 앞에 문득 놀라움으로 깨어 나는 순간이 있지 않은가. 그렇듯 늘 우리 곁에서 부스러기 밥 얻어 먹으며 지나는 그인지라 눈길도 주지 않았던 우리가 너무 무정하다고 느끼게 되는 수도 있다. 그 새로운 자각을 함께 나누고 싶은 뜻이었다.
그의 존재는 사회와 새문안교회에 아무런 이득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돌봄 없이도 잘 버텨 준 그가 고맙게 느껴지기도 한다. 큰 욕심없는 그는 남을 향한 원망의 독을 내뿜을 줄 모르며 다른 이에게 해악도 끼치지 않고 많은 쓰레기를 배출하지도 않는다. 그런 삶을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모독이다.
그는 하나님이 세워두신 파수꾼일지도 모른다. 검은 비닐 봉지들을 구질구질하게 들고 다니는 그와 달리, 우리는 마음 한 편에 미움과 허욕의 냄새나는 주머니들을 감추며 살지는 않을까.